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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과 행동심리학 II

지난 편에 이어 마케팅과 행동심리학의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경제학의 한 부분으로 자리 매김하면서 점점 더 중요성을 더 해가는 행동심리학이 마케팅 활동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데요, 나머지 부분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미끼 효과(Decoy Effect, Asymmetric Dominance Effect, Attraction Effect)

소비재 상품과 산업재 상품 모두 고객을 위한 일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보다 상품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저렴해야 판매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또한, 단순히 가격에 의해서만 가치평가가 이루어지는 소비재 상품과 달리 기술 중심의 산업재 상품은 호혜성과 정보격차의 해소, 미래 산업 상황에 대한 대비 등 고객이 판단하는 가치 요소가 더 많게 됩니다. 따라서, 공급자는 조금 더 다양한 가격 정책을 제공해 고객의 선택을 쉽게 유인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미끼 효과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미끼 효과는 결정 이론(Decision Theory)에서 파생된 개념입니다. 공급자가 고객에게 두 가지 가격 옵션을 제공했을 때, 고객은 선택을 미루거나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공급자는 저렴한 대신 기초적인 기능/서비스만 제공하는 옵션과 상대적으로 비싸지만 모든 기능/서비스가 포함된 옵션을 제공합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둘 다 좋아 보이는데, 어느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선택 프로세스 상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해서 더 혼란스럽고 이에 따라 아예 구매 프로세스를 연기하는 사례도 종종 있습니다. 조금 더 두고봐야겠다는 마음인데, 공급자에게는 좋은 신호가 아닙니다. 이 때 고객의 선택을 쉽게 유인하기 위해 세 번째 옵션을 슬쩍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아래 사례를 보시기 바랍니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확장 되면서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공급자를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한 공급자가 아래와 같은 옵션을 제공했다고 생각해 보시지요.

Option 1: 400GB / $400

Option 2: 200GB / $300

평소 사용 기준을 보면, 200GB도 충분하기 때문에 저렴한 옵션을 선택해도 될 것 같은데, 앞으로 변수가 있을 수도 있어서 가격을 조금 더 주고 더 큰 저장공간을 구매해야 할까? 고객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 때를 대비해 공급자는 하나의 옵션을 더 추가합니다.

Option 3: 250GB / $350


언뜻 생각해도 이 옵션은 큰 장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옵션은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과 더 많은 저장 공간이라는 가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옵션 3을 보면서 가격만 쓸데없이 높다고 생각한 고객은 옵션 2를 선택하고, 저장공간의 부족함에 눈이 가는 고객은 옵션 1을 더 중시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 마케팅 현장에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요, 모두 인지 심리학에 기초한 마케팅 활동입니다. 주의할 것은 미끼 효과는 말 그대로 미끼에 해당하는 심리적 현상만을 유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때때로 미끼 옵션이 기존 옵션보다 더 주목받는 사례도 있습니다만, 예외적인 경우일 뿐입니다. 세밀한 전략적 분석 하에 가격을 선정하고 필요할 경우 고객의 행동을 유인하기 위해 사용해야지, 미끼 효과를 남발하면 고객에게는 가격에 대한 혼선을 주고, 내부 구성원들에게는 전략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4. 고립 공포감(FOMO, Fear of Mission Out)

1990년대는 마케팅 이론이 큰 붐을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80년대를 지나면서 행동심리학 분야가 활발해져서 마케팅 고객의 행동과 심리 상태에 적용할 만한 이론들이 많이 제기되었기 때문인데요. 고립 공포감, 흔히 영어 줄임말 '포모'라고 하는 것도 이런 기류에 의해 1996년 댄 허먼(Dan Herman)박사가 처음으로 규명했습니다. 포모는 일정한 준거집단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 대하 두려움입니다. 확연하게 왕따를 당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의심할 만한 근거가 없음에도 고객들은 다른 경쟁업체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있거나 산업계에서 더 인정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LinkedIn과 같은 SNS을 통해 끊임없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인맥을 넓혀 나가는 것도 그 심리 기저에는 포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특히 이제 사업을 시작하려는 스타트업 마케터라면 포모와 같은 상대적 박탈 심리를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업계의 2등 그룹 기업들은 1등 기업 대비 정보와 호혜성에 있어서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고객들을 탐색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인지 심리학에 기초한 행동은 원래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데, 고립 공포감의 정도가 심한 고객들은 매우 열심히 SNS에 빠져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공포감을 해소할 도구가 마련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심리 기저를 파고들어 호혜성을 구축할 수도 있고, 정보 격차를 해소하면서 고객의 심리를 우호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 다는 단점이 있지만, 느리게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 사례도 많습니다.

산업계의 선두 기업들은 포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AT&T의 "Don't be left behind" 캠페인, 듀라셀의 "Stay in charge" 등의 표현은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 특히 포모를 자극해 자사 브랜드의 상대적 강점을 강조하는 사례입니다.

소비재 마케팅에는 이 포모를 조금 더 정교하게 활용하기도 합니다. 제품의 공급 수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해 고객들이 가지는 가격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는 것입니다. '마감 임박', '오늘만 이 가격', '소량 입고' 등의 표현은 고객의 포모를 자극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방법이지만, 자주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지기도 하고, 기술 중심의 제품들은 이런 표현들이 오히려 제품의 가치를 깍아 내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마케터라면 포모의 심리적 기저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마케팅 활동을 설계해야 하는 의무가 있고, 그 중요성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5. 손실회피 편향(Loss Aversion)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산이나 지위를 "잃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실회피 편향은 이런 심리 현상에서 출발하여 인지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말로 보입니다만, 사실 이 이론은 노벨상을 받을 만큼 가치있는 이론이었습니다. 심리학자임에도 노벨경제학을 받았고, 행동경제학을 탄생시킨 데니얼 카네만(Daniel Kahneman)은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유명한 실험을 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우연히 길을 걸어 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참가자에게는 우선 만원을 건네 줍니다. 그리고, 동전을 주면서 두 가지 옵션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게 유도합니다. 물론, 얘기만 듣고 추가 선택을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받은 만원은 고스란히 참가자의 몫입니다. 추가 선택 사항은 이렇습니다.


option 1: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지불 받은 만원을 돌려줘야 한다.

option 2: 뒷면이 나오면, 추가로 2만원을 더 지급받는다.


독자분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한국은 파생상품 시장이 GDP의 7배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큰 상품에 대한 투자를 즐기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게임에 참여할 것도 같습니다. 손실회피 편향과는 반대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카네만의 실험은 사람들이 얼마나 손실회피 편향이 강한지 보여줬습니다. 실제로 참여비 만원을 받은 사람들 중 약 90%의 사람들은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참가비 만원만 받고 돌아간 것입니다. 카네만은 후에 논문을 쓰면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이익보다는 확실한 손해를 더 크게 체감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뜻하지 않게 만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주머니에 있던 만원을 잃었을 때 작게는 2배에서 10배까지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손실회피 성향은 제품의 선택과 구매가 조직적으로 논의되는 산업재 혹은 기술 제품일수록 더 크게 작용합니다. 이런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일 가능성이 높은데, 전문가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최소한 현상 유지를 잘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먼저 계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인정 욕구가 작용하기 때문인데, 이런 점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으로 비칠 때가 많습니다. 호혜성과 더불어 손실회피 성향은 스타트업 마케터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큰 장벽이 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을까요? 마케팅 측면에서 가장 유용한 방법은 '안 사면 손해'일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기술 마케터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법인데요. 그 분야의 선두기업들에게는 해외의 강력한 경쟁기업들이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2위 그룹의 기업들에게는 선두기업들이 검토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상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지 거짓을 전파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가 없다면, 첫 번째 고객에게 충분한 기간 동안 가격 메리트를 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산업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제품이니, 먼저 사용해 보고, 그 결과 공급자는 5년 혹은 10년과 같이 일정한 기간동안 차별적인 가격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의 모 병원은 최신의 유방암 조기 검진 시설에 적극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검진을 받으러 오는 여성의 숫자가 잘 늘지 않았는데요. 이들의 홍보 문구는 이러했습니다.


"매년 유방암 검사를 하세요. 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제거할 수 있습니다."


명확하고 의미있는 문구였지만, 해당 고객들을 유인하기에는 조금 미흡한 면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문구로 바꾸었습니다.

"만약 매년 유방암 검사를 하지 않는다면, 몸속에서 자라고 있는 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바뀐 문구의 효과는 굉장했다고 합니다. 고객의 불안을 부추김으로써 방문을 자극했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고객의 건강을 우선시 한다는 논리로 이런 비난을 잠재웠습니다. 만약에 더 큰 비난이 있었다면, 이 문구는 오히려 병원의 신뢰도에 타격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손실회피 편향을 상황에 따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고, 마케터들의 세련된 역량이 발휘되어야 할 분야입니다.


지금까지 두 편에 걸쳐 행동심리학과 마케팅 활동의 연결 고리를 살펴봤습니다. 마케팅 계획을 수립할 때 적극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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