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케팅을 하고 계시나요?
- 전병옥
- 2020년 1월 2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0년 2월 3일
박지성 마케팅, 그림자 마케팅, 마케팅 천재, 마케팅 4.0, 마케팅 바이블, 미래형 마케팅, 마케팅 불변의 법칙, 포지셔닝, 중국 마케팅, 마케팅 전쟁...책장에 꽂혀있는 마케팅 관련 책들의 모음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시험은 하나인데, 참고서만 많이 산 기분입니다. 다양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마케팅 전체 구조에서 보면 모두 비슷한 얘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케팅 관련 책 대부분이 B2C 산업을 기본으로 작성된 것이어서, B2B 산업에서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 할 깨다 많습니다. (필자의 책, <케미칼 마케팅, 화학 산업의 위한 B2B 마케팅>이 이런 점을 보완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은 실무를 통해 습득해야 하는데, B2B 산업내에서도 기업마다 마케팅이 역할이 다르게 정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좀 헷갈리게 하지요.. 오늘은 기업내에서 마케팅의 역할이 어떻게 구분되는 지 (CEO같은) 기업 책임자들의 인식과 관점에 기인하여 살펴보겠습니다.
B2B 산업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마케팅의 역할에 대한 많은 불평을 들었습니다. 고담준론만 늘어 놓는다 라거나, 비용만 잡아 먹으면서 성과는 없는 부서라는 불평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필자 역시 이런 불평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점은, 이런 불평들이 모든 기업과 조직에 퍼져있다는 것입니다. 필자만 잘 못한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세계적으로 마케팅 역할이 무엇인지, 기업의 성과에 대한 기여도는 어느 정도인지 분석한 자료가 엄청 많은데,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불평과 질문이 그만큼 널리 공유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는 학술적인 내용보다, 실제 자원과 예산 할당을 결정하는 기업의 책임자들의 관점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려 합니다.
필자의 경험과 여러 조사에 의하면, B2B 기업 환경에서 마케팅의 역할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CEO 및 기업 이사회의 구성과 관점에 따라 각 사의 마케팅 역할이 이 세가지 중에 하나로 정의되어 지고, 그에 따라 자원과 인력이 할당되어 질 것입다. 그렇다고 기업 내에서 하나의 마케팅 역할만 존재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세가지 역할이 다 존재하지만, 기업 리더들의 관점에 따라 주도적인 역할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마케팅 담당자라면, 우리 기업이 가지고 있는 관점과 기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립해 보기를 권유합니다. 이 부분만 잘 파악해도, 진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Sales supporter. 주로 영업이나 공급망 관리 분야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CEO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입니다. 산업내에서 점유율 경쟁이 치열하고, 제품 포트폴리오가 단순할 수록 이런 경향이 심해집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는 CEO들은 기업의 성과는 분기별 매출과 이익같은 숫자에 의해 정의되어 진다고 믿습니다. 이들에게 시장에 대한 전략적 접근과 미래 시장 개척과 같은 마케팅 활동을 얘기해 봐야 큰 점수를 받기 어려운 이유가 이런 면 때문이지요.. 마케팅은 매출을 일으키는 영업 활동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업 환경에서 마케팅 부서는 주로 영업을 지원하기위한 판촉 자료 준비와 홈페이지 관리와 같은 활동에 집중할 것입니다. 최근에 콘텐츠 마케팅 분야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런 기업 환경에 있는 마케터들이라면, 콘텐츠 마케팅 분야에 대한 역량을 강화해 효율을 높일 것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Sales enabler. 가장 일반적인 유형일 것입니다. 주로 엔지니어 출신의 CEO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영업과 마케팅을 분리하여 생각합니다. 영업이 고객을 관리하면서 단기간의 매출을 책임진다면, 마케팅은 시장 전체를 분석하여 중/장기 이익률을 관리합니다. 이런 관점하에 정교하게 작성된 마케팅 계획을 요구하고, 이 계획은 기본적으로 영업 부서와 충분히 조율된 것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기업 환경에서, 마케팅 부서는 영업에 비해 인원 규모는 작지만, 예산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을 요구받고, 담당자들의 경력도 화려할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영업과 마케팅 사이의 알력이 없을 수 없는데, 이를 잘 조율해 나가는 것이 관리의 핵심입니다. 마케팅 활동의 기대치가 높다 보니, 세부적인 활동 계획이 비교적 잘 수립되고 관리되어 질 것입니다. 승진에 야망이 있는 R&D 관리자라면, 이런 기업 환경에서 마케팅 분야로 업무를 바꿔볼 것을 권유합니다. 본인의 역량이 크게 확대되면서 여러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Strategic marketer. 자주 보기 어려운 유형입니다. 간혹 다국적 기업들이 회사 홍보 문구에 이와 같은 표현을 집어 넣곤 하는데, 들여다 보면 사실 별거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케팅 분야에서 성장한 CEO들은 마케팅 활동이 기업의 핵심 전략부터 사업 운영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마케팅 관련 지식이 풍부한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강력한 마케팅 조직을 구축하고, 이들을 통해 전사적인 마케팅 전략과 프로세스를 개발합니다. 이 마케팅 전략이 기업 활동의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한 20여년 전에 6-시그마라는 품질 개선 활동이 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적이 있는데, 6-시그마 대신 관련 마케팅 전략을 집어 넣고 상상해 보면 비슷할 것입니다 (경험한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이런 기업 환경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마케팅 전략과 활동 방법을 마치 경전처럼 학습하게 됩니다. 예전의 6-시그마처럼 말입니다. 이런 기업환경에서는 모든 회의에서 마케팅 전략과 프로세스에 기초하여 내용이 작성되고 논의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거의 경전과 같습니다). 마케터들에게는 매우 이상적인 환경이겠으나,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불편함을 줄 수 있습니다. 이를 잘 풀어가는 것이 관리의 핵심이지요... 다시 6-시그마 예를 들면, 예전에는 인사나 회계 부서에서도 6-시그마 방법을 적극 활용하곤 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후에 이런 업무 방법이 귀신같이 사라진 것을 보면 (CEO가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관련 방법이 성공적으로 안착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슷한 일이 마케팅 전략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비효율 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기업 환경은 영업 부서의 사람들에게 좋은 기회가 됩니다. 포괄적이고 치밀한 마케팅 전략은 영업 활동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적극적으로 적용하면 사내에서 곧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사업 환경과 CEO의 관점에 따라 마케팅 역할이 어떻게 정의되는 지 살펴 보았습니다. B2B 산업 종사자들이라면, 우리 회사는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 관심을 가지고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본인의 역할과 활동을 규정하고 실행하면 회의시간에 주목받는 기회가 점점 커질 것으로 믿습니다. 필자의 평소 주장대로, B2B 산업 전체가 마케팅 조직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현재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 목표 지점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좌표를 잃어 버리면 본인만 손해 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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